탈무드 - 시간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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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나라



두 나라의 왕이 한 뼘 정도밖에 안되는 땅을 놓고 오랫동안 싸우고 있었다.

한쪽이 그 땅을 차지하는가 싶으면 곧 다시 다른 쪽이 공격하여 점령해 버리곤 하였다. 아주 조그만 땅을 사이에 두고 그 동안 쌍방이 무수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보았다.

그래서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한 두 나라 왕은 날을 정해 만났다. 그리고 서로 혈통을 조사해 보아서 더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쪽이 분쟁이 심한 그 땅을 차지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혈통을 따져보니, 한쪽 왕은 과거에 유태인을 모두 죽여 없애려 하였던 페르시아의 총리대신 하만의 자손임이 밝혀졌다.

몰랐던 자신의 혈통이 밝혀지자 그 왕은 선조 하만처럼 유태인을 탄압하려 들었다. 그는 유태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새로운 법률을 만들었다. 그 법률이란 이런 것이었다.

'이 나라 안의 유태인들은 최단시일 내에 돈 십만 냥을 왕에게 바쳐야 한다. 만일 그렇게 안하면 모르데파이라는 사내를 교수형에 처하고 말겠다.'

이 법률이 선포되자 유태인들은 모두 금식에 들어갔고, 이곳 저곳의 현자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들을 위해서 기도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중의 한 현자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이러이러한 고을에 가보게. 거기 가서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서 옷을 깁고 있는 사내를 찾게. 그 남자에게 나의 이름을 말하고 도움을 청해보게."

유태인들은 그 현자가 가르쳐주는 고을로 갔다. 그리고는 성문 밖에서 가난에 찌들 린 집을 발견하고는 그 주인을 만나 유태인들이 탄압 받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 가난한 집의 주인 남자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을 도와줄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오. 당신들이 보듯이 나는 옷이나 꿰메주는 가난한 바느질장이에 불과합니다."

사자는 현자의 이름을 말하고 다시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가난한 남자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알았소. 아무 걱정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보시오."

얼마 후, 유태인을 핍박하던 그 나라 왕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왕에게는 아침에는 누구라도 자신의 방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떠보니 방안에 유태인인 듯한 사내가 누더기를 입고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넌 누구냐? 감히 내 명령을 어기고 내 방에 들어와 있다니!"

왕은 매우 화를 내며 그를 죽이려고 칼을 빼어 들었다.

그 순간, 왕은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혀 하늘 높이 끌어 올려졌다. 그리고는 허공을 날아서 성에서 백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어떤 무덤 속에 갇혀 버렸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쳐져 있는 무덤 속에서 왕은 하루종일 소리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 무렵, 벽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어깨에 자루를 둘러멘 거지가 나타났다. 그는 자루 하나에서 빵을 꺼내더니 왕에게 주었다. 그 다음날도 똑같은 시간에 거지가 와서 빵을 주고는 갔다. 그러기를 어언 일주일. 팔 일째 되는 날, 왕은 빵을 주러 온 거지에게 말했다.

"무덤 속에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일을 하는 편이 오히려 낫겠소. 그러나 날 제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시오."

그러자 거지는 왕을 어느 숲속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왕은 바라던 대로 실컷 일을 하게 되었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판자를 만드는 것이 왕이 맡은 일이었다. 그 일이 모두 끝나자 다음엔 더욱 힘든 일을 했다.

이렇게 왕이 여러 가지 일을 바꿔가면서 열심히 하는 사이에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어느 날, 그 거지가 찾아와서는 왕에게 일렀다.

"이러이러한 고을로 가거라. 그곳에는 왕이 죽고 없으니 네가 가서 왕이 되겠다고 말하여라. 그러면 모든 백성들이 너를 왕으로 받들 것이다. 단, 한 가지 꼭 지켜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곳에 가려면 '유태인에 대한 어떠한 차별 규정도 폐지한다'라고 선언하여야만 한다."

왕은 거지의 말에 쾌히 승낙하고 그것을 약속하는 문서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서를 거지에게 주고는 거지가 일러준 나라로 갔다.

그곳에 이르자 그는 큰 환영을 받고 왕으로 받들어졌다. 왕으로 취임한 그는 숲속에서 고생하였던 일을 거울삼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다스리려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성밖으로 나왔다가 자신이 과거에 다스렸던 나라와 비슷한 곳에 오게 되었다. 샅샅이 살펴보니 자신이 왕으로 있던 그 나라가 틀림없었다. 멀리 자기가 살던 성도 보였다.

그는 급히 말을 몰아 성안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쓰던 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신기하게도 그 방은 자신이 떠나기 전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자신이 떠나던 날 아침에 자기 방에 들어와 있던 낡은 옷차림의 유대인까지도 똑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 그전의 유태인은 빈손이었는데 지금 보이는 유태인의 손에는 유태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차별 규정도 폐지하겠다고 왕이 맹세한 문서가 쥐어져 있었다.

왕의 직인이 찍힌 문서가 있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된 왕은 유태인에게 내렸던 탄압 법을 철폐시키라고 명령했다.

왕이 수년간이라고 생각했던 그 동안의 일들이 사실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이 기묘한 사내는 왕을 그 동안 시간이 없는 세계로 데려갔기 때문에 왕이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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