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 은혜를 배반한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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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배반한 뱀



어느 추운 겨울, 노인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추위로 거의 얼어죽어 가는 뱀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자비로운 노인은 그 뱀이 불쌍하게 생각되어 조심스럽게 집어서는 자기 품속에 품어 주었다. 노인의 온기로 차츰 원기를 회복하게 된 뱀은 입장이 달라지고 보니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드디어 완전히 힘을 되찾게 되자 뱀은 생명의 은인인 노인의 몸을 둘둘 감아 죄어 죽이려고 했다.

놀란 노인은 뱀에게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 나쁜 놈 같으니.... 네가 얼어죽을 것을 불쌍히 여겨 내가 살려 주었거늘, 감히 나를 죽이려 해! 이게 무슨 경우냐? 자, 함께 재판관 앞에 가서 따져보자."

"좋지. 그럼 누구를 재판관으로 세우지?"

"길을 가다가 우리가 맨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자를 재판관으로 삼자."

"조다."

노인과 뱀은 함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서 저쪽에서 황소 한 마리가 오는 것이 보였다. 황소를 불러 세운 노인은 황소에게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뱀이 한마디했다.

"나는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네. 성서에도 나와 있지 않는가. '뱀과 여자의 후손은 원수가 되게 한다.'라고."

묵묵히 듣고 잇던 황소는 점잖게 판결을 내렸다.

"뱀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인간이 뱀에게 아무리 자비를 베풀었어도 뱀은 악하게 보답을 해도 좋을 것이오. 사실 그 동안 우리들은 너무 푸대접을 받아왔소. 나의 주인을 봐도 그래.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인을 위해 뼈빠지게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은 내게 고마워 할 줄 모르거든. 주인 놈은 하루종일 놀면서 맛있는 음식만 골라먹고 내게는 찌꺼기조차 주는 걸 아까워하지. 또 잠자리는 어떻고, 자기는 따뜻한 침대에서 포근히 자면서 나는 마당에서 덜덜 떨면서 자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거든."

황소는 처음엔 점잖게 나오다가 점점 흥분하여 욕을 내뱉기도 하는 등 과격한 말과 인간에 대한 불만만을 쏟아붓고는 자리를 떠났다.

노인은 황소의 엉터리 판결에 화를 내며 다시 뱀과 함께 계속 걸어갔다.

이윽고 이리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노인은 또 이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재판을 해 달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리는 노인과 뱀을 번갈아 보고 나서는 황소와 똑같은 판결을 내렸다.

역시 화가 난 노인은 다윗 왕에게 가서 재판을 받자고 뱀에게 말했다. 이윽고 다윗 왕 앞에 나선 노인과 뱀. 그러나 다윗 역시 노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진 않았다.

"성서에서도 말했듯이, 옛부터 뱀과 인간은 원수지간이다. 그러니 뱀이 너를 해친다 해도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다윗 왕 앞을 물러 나왔다. 그때 뜰 한편에 있는 우물가에서 혼자 놀고 있는 솔로몬 왕자가 노인의 눈에 띄었다.

그때 소년 솔로몬은 아버지인 다윗 왕의 지팡이가 우물에 빠졌기 때문에 수면에 돌을 던져 지팡이가 물위로 떠오르도록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노인은 솔로몬의 그런 행동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채고는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왕자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 해 봐야겠다. 어쩌면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줄지도 모르겠군.'

노인은 솔로몬에게 다가가 뱀이 자기에게 했던 못된 행동을 소상하게 얘기했다.

"아버님께 이렇게 다툰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드렸습니까?"

"물론 그랬습니다. 그러나 대왕님께서는 대왕님의 힘으로도 저를 구해줄 길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랬나요? 어디 우리 함께 아버님께 가봅시다."

그리하여 솔로몬과 노인 그리고 뱀은 다시 다윗 왕 앞에 서게 되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밖에 판결을 내릴 수 없었느니라."

"아버님, 그러시다면 이 사건을 저에게 한 번 맡겨 주시겠습니까?"

솔로몬의 요청에 다윗은 잠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들의 총명함을 아는지라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먼저 솔로몬은 뱀을 향해 물었다.

"너는 왜 너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거냐?"

"그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너는 성서에 나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르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이런 말을 들어보았느냐? '서로 다투고 있는 두 사람은 재판관 앞에서는 반듯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율법 말이다. 만일 네가 성서를 그렇게 존중한다면 너는 즉시 그 노인의 몸에서 떨어져 반듯하게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아,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뱀은 대답과 동시에 노인의 몸을 감고 있던 것을 풀고는 노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솔로몬은 노인을 향해 판결을 내렸다.

"성서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성서에서 명하는 대로 빨리 하시오!"

그러자 노인은 지팡이를 번쩍 치켜들어 뱀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리하여 뱀은 배은망덕했던 죄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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