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八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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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八佾


    [1]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께서 계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뜰에서 천자인 양 여덟 줄로 춤추게 하다니, 이것을 참고 봐줄 수 있다면 그 무엇인들 참고 봐주지 못하겠는가?

    [2] 三家者以雍徹.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노나라의 세도가인 세 대부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낸 후에 『시경』의 「옹」을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사를) 돕는 것은 제후들이요, 천자께서는 장엄하시도다’라는 가사의 노래를 어찌 세 대부들 집안의 사당에서 쓰는가?”

    [3]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예의를 지킨들 무엇하겟는가? 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음악을 한들 무엇하겠는가?”

    [4]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 與其奢也寧儉, 喪, 與其易也寧戚.”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대단한 질문이로다! 예는 사치스럽다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형식을 잘 갖추기보다는 오히려 슬퍼하는 것이 낫다.”

    [5]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랑캐에게도 임금이 있으니, 중원의 여러 나라에서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법도가 무너진 것과는 다르다.”

    [6]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계손씨가 태산에서 제사를 지내려 하자, 공자께서 염유에게 말씀하셨다. “자네가 막을 수 없겠는가?”
    염유가 대답하였다. “제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어찌 태산이 임방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으나,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활쏘기로다! 그러나 절하고 사양하며 활쏘는 자리에 오르고,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시니 그 다투는 모습도 군자답다.”

    [8]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또렷하니, 흰 바탕에 무늬를 더하였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라는 것이다.”
    자하가 말하였다. “에는 나중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켜 주는 자는 상이로구나! 비로소 자네와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9]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에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뒤를 잇는 기나라로는 확증하기에 부족하고, 은나라의 에에 대해서도 내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뒤를 잇는 송나라로는 확증하기에 부족하다. 이는 자료와 현명한 사람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이것만 충분하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10]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체 제사를 지낼 때, 술을 땅에 부으며 신의 강림을 청하는 절차 이후는, 나는 보고 싶지 않다.”

    [11]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어떤 사람이 체 제사의 이론에 관해서 질문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르겠소. 그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이것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오!”라고 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12]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공자께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실 때에는 조상께서 살아계신 듯이 하셨고, 다른 신께 제사 지낼 때는 그 신이 와 게신 듯이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자신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

    [13]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가 물었다. “안방에다가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엌에게 잘 보인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소.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는 것이오.”

    [14]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은 두 나라를 본받아 문화가 찬란하도다!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15]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공자께서는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물으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누가 추 땅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더라.”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이다.”

    [16]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를 할 때 과녁의 가죽을 꿰뚫는 데 주력하지 않는 것은 힘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니, 이것이 옛날의 도리이다.”

    [17] 子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이 매월 초하루에 지내는 곡삭제에서 희생으로 양을 바치는 것을 없애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예를 아낀다.”

    [18]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했더니,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여긴다.”

    [19]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20]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21]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栢, 周人以栗, 曰, 使民戰栗.”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이 재아(宰我)에게 사(社)에 대해 물었다. 재아(宰我)가 대답하였다. “하나라 왕조는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栗〕를 심었는데, 백성들이 전율(戰栗)케 하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은 논란하지 말고, 끝난 일은 따지지 말며, 이미 지나간 일은 허물하지 않는 것이다.”

    [22]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23] 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이 작았도다!”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집이 셋이나 있었고 가신들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으로 문을 가리는 법인데, 관중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고,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이 함께 연회를 할 때 술잔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 법인데 관중도 또한 술잔을 놓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른다고 하겠느냐?”

    [24] 儀封人請見,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 땅의 한 관리가 뵙기를 청하며 말했다. “군자께서 이 곳에 오시면 내가 만나뵙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자를 모시던 제자들이 뵙도록 안내해 주었더니,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째서 공자께서 벼슬이 없으심을 걱정하십니까? 천하의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늘이 앞으로 선생님을 세상의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25]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공자께서 소에 대해서는 “소리의 아름다움이 지극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의 선함도 지극하다.”고 하셨고, 무에 대해서는 “소리의 아름다움은 지극하지만 그 내용의 선함은 지극하지 못하다”고 하셨다.

    [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실천하는 데 공경스럽지 않으며, 상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 사람을 인정해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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